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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와 볼거리

인간 실격, 다자이 오사무

by 호머그로스 2024. 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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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이 제목은 한참동안 거리를 뒀던 책이다. 누구나 그러하듯 어두운 동굴을 지날 때가 있고, 그 터널은 한번으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지만 개인적으로 저 제목을 나 역시도 칠흙같은 어둠으로 뒤덮인 동굴의 절반을 겨우 지날즈음에 접했다. 동굴을 지나느라 무릎은 다 까지고 피고름이 맺혀있는데 동굴 천장이 내리누르는 무게감에 감히 허리는 펴지도 못하는 현실에 자칫 다자이 오사무를 숭배하게 될 것 같기도 했기 때문에 더욱 열심히 모른 척 했다. 부디 지금 힘든시기를 지나고 있다고 생각되는 누군가가 이 책을 접하게 된다면, 굳이 읽지 마시라 말리고 싶다.

  언제나 승리만을 이어갈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동굴이 지속되지도 않는다, 노력을 한다면. 그렇게 나도 겨우 햇볕 아래 설 수 있었고, 지금에 와서야 비로소 이 작품과 다자이 오사무를 마주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나보다. [인간 실격]의 요조와는 달리 나는 그리 순수한 영혼은 아닌 것 같다는 결론은 덤이다.

  [인간 실격]의 주인공인 요조는 다자이 오사무와 참 많이 닮아있다는 생각을 작품을 읽는 내내 지울 수가 없었다. 1900년대 초 제국주의에 날개를 달았던 일본이 우리나라를 거쳐 난징을 거쳐 뻗어나가고 있을 무렵 도쿄에서 국회의원직을 맡고 있는 아버지를 둔 다자녀 가정 중 여덟째, 혹은 여섯째로 아버지와 다름 없었을 형들의 가르침을 받으며 자란 귀여운 동생과 같은 배경을 가지고 태어난 요조는 이 부분마저 다자이 오사무와 닮아있다. 100년이 지난 지금으로 생각해도 화목하고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다면 그저 행복할 것 같은데 주인공 요조는 그렇지 않았다. 당시 전 세계를 뒤덮고 있었던 냉전 분위기는 일본에서도 흐르고 있었는지 마르크스 이론과 공산주의에 대해 공부하는 비밀모임에 대한 내용이 등장하기도 하는데 자본주의와 가까운 스스로의 배경을 안타까워하기도 때로는 미안해하기도 하는 요조의 모습이 또 저자를 떠올리게 했다. 이 둘은 마지막 모습까지도 닮아 있었는데, 여러번의 자살 시도 끝에 결국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기 때문이었다.

  쇼군들이 일본을 지배했던 시절 사무라이들에게서도 흔히 볼 수 있었던 굴욕적인 모습을 보이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는 비장하고도 왠지 기꺼이 죽음을 반기는 것 같은 태도가 어렴풋이 요조와 다자이 오사무에게서도 느껴졌다. 그랬으니 신격화 된 천황을 위해 수많은 젊은이 혹은 아이들까지 카미카제에 지원하지 않았을까. 결국 천황도 인간이었으며 일본의 제국주의도 두번의 대형 공습으로 처참하게 마무리 되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천황도, 국가도 스러지기 직전의 위기에 많은 젊은이들에게 위로 혹은 공감대가 되어줬던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은 일본에서 드라마화, 영화화 되어 내내 회자될만큼 여전히 높이 평가받고 있는 작품임은 틀림없다.

  아마 다자이 오사무는 요조를 통해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음을, 그리고 때론 비겁하게 죽음의 그림자에 기대어 도망치기도 하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제 불행은 거절할 능력이 없는 자의 불행이었습니다. 권하는데 거절하면 상대방 마음에도 제 마음에도 영원히 치유할 길 없는 생생한 금이 갈 것 같은 공포에 위협당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지금까지 제가 아비규환으로 살아온 소위 ‘인간’의 세계에서 단 한 가지 진리처럼 느껴지는 것은 이것뿐입니다.”



인간 실격, 다자이 오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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